남상인 박사 (사)한국상담학회 제7대 회장 순천향대학교 교수   8월 8일은 한국상담진흥협회에서 ‘상담의 날’로 정한 날이다. 이처럼 일 년 중 하루를 ‘상담의 날’로 제정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상담을 홍보하고 상담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담자에 대해서는 사명과 자세를 스스로 되새겨 보도록 함으로써 내담자를 위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상담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구축되어 온 국민 누구나 마음이 불편하고 무엇인가 개운하지 않을 때 부담 없이 상담자를 찾아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상담자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내담자에게 최대의 유익을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하고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그들이 원하는 상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적으로 잘 준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윤리적으로 잘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담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자가 될 수 있다. 현재 상담자 양성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대학교육 외에 제도권 밖에서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것이고 일부 연수기관에서는 상담자 교육을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연수교육비를 받고는 실제 계획된 만큼 교육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련감독자가 서명을 해준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어쩌면 대학의 상담전공 영역뿐 아니라 상담전문가 집단 전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연수기관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리라 생각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꼭 바로 잡아야 한다. 학회로부터 전문가로 인정받아 상담사 자격증은 받았는데 실력은 그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가짜 전문가들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문가는 자격검정 과정에서 걸러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재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부실한 연수기관의 부정을 사전에 차단하여 보다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상담자 양성교육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연수기관은 상담기관이 연수를 담당할 때 그 기관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즉, 연수기관의 설립 목적은 내담자 상담이고 상담자 연수는 부차적이다. 그런데 연수기관들 중에는 본말이 전도되어 내담자 상담은 하지 않고 상담자 연수를 위주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운영되다 보니 연수기관이 부실하거나 학원처럼 운영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운영 대리기관까지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예비상담자들을 활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수련감독자들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이 생기다 보니 비윤리적이고 비정상적인 경우들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도 잘못된 기현상이다. 상담기관 원래의 취지를 잘 살려서 수련감독자들은 내담자 상담을 위해 보다 힘쓰고 필요에 따라서 상담자를 양성해야 한다. 수련감독자들은 예비 상담자들을 활용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봉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욱 발전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는 대학의 상담교육 인증제도를 하루 빨리 시행하여 보다 좋은 교수진과 좋은 커리큘럼에 의해 상담자가 양성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난 달 학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연수기관의 이러한 문제를 학회장 명의로 공론화 하였고 연수기관에 대해 성실한 교육을 당부한 적이 있었다. 공론화 될 만큼 이 문제가 커진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렇게 조치를 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연수기관을 운영하는 모든 수련감독자들은 ‘상담의 날’ 제정을 기화로 상담자 양성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이해하고 상담자 본연의 역할뿐만 아니라 수련감독자 역할에 충실하게 연수기관을 운영해주길 이 자리를 빌어서 간곡히 당부한다.  

  김 성 회  박 사 한국상담학회 제6대 회장 한국조화상담연구소 소장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많은 것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필자도 7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 오고 있다. 특히, 1978년부터 시작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상담에 대해 배워 왔다. 배움은 주로 스승을 통해 이루어진다.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자기를 가르치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하고 사부(師父), 함장(函丈), 선생, 사(師)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자는 누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주 생각해 왔고 여기서도 스승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책을 통해서 배운다고 한다. 혼자서 책을 보면서 그 내용을 배울 수 있고 스승의 도움을 받아 책의 내용을 좀 더 깊이 배울 수도 있다. 상담전공자들은 대부분 학부와 대학원 과정의 수업을 통해 상담에 입문한다. 수업은 교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전공자들은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과 아울러 책에 나온 내용을 배운다. 이렇게 본다면 책을 통해 배우는 것도 결국은 교수나 저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매개로 하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저자를 통해서나 훌륭한 교수, 또는 성인(聖人)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움에서는 자기 이외에 대한 지식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이 자기 이외의 특정한 사실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전문상담사의 전문적 자질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전문상담사는 상담 시 매 순간 1)자신에 대한 이해와 2)내담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3)효과적인 상호작용(상담하는)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관련된 지식을 잘 알아야 하고, 2)알고 있는 바를 실행할 수 있어야하며, 3)실행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매 순간 저절로(신체가 자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전문상담사가 첫째로 배워야 할 것은 자기이해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답을 얻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내담자와는 물론 내담자 이외의 사람들과도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각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담과정에서 전문상담사가 내담자의 특성(인지, 정서, 행동, 신체건강)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분노하여 지적하거나, 내담자가 자신에게 위협을 준다고 생각하여 공포를 느껴 도피(또는 회피)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기력해져서 내담자를 만나지 않거나 상담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문상담사가 이러한 인지나 정서 또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기능이 충분히 발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담 중 매 순간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한 상호작용을 유도해 나가기 어렵다. 전문상담사의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문상담사가 스스로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인지, 정서, 행동 및 신체건강상태 등 자신에 대해 알고 이를 토대로 상호작용 패턴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전문상담사가 보다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기 위한 첫발인 자기이해를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그 중 하나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하면 화나고, 불안하거나 두려우며, 무력해지는지를 각성하고 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다. 가정, 학교, 직장, 군대 등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경우에 이러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데서 부터 자기이해가 시작됨을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누구의 어떤 행동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바꾸어 각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각성시켜 주는 나의 스승이다. 내가 대하기 힘들어하는 하는 주변의 사람이 줄어들수록 내가 더 전문적인 상담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의 사람이 모두 나의 스승이며 나를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훌륭한 나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가까운 주변을 보니 나의 스승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이들을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더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김형태 박사 한국상담학회 4대 회장 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상담(相談)은 인간관계(相)와 의사소통(談)을 통해 인간의 바람직한 변화를 다루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를 인간관계 전문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첫째 상(相)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은 3종류의 관계를 갖는바, 절대자(하나님)와의 수직적 관계. 동료들과의 수평적 관계 자기 자신과의 대내적 관계에서 정명(定名)을 유지해야한다. 사회생활은 전문성(10%), 지식(20%) 인간관계(70%)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외경(畏敬) 인간에 대한 “~답다 지향”(父父子子 兄兄弟弟 /아버지답고 자녀답고 형답고 아우답다./ 스승답고 제자답고 상사답고 부하답고 남편답고 아내답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태도(자아정체감, 자아존중감 책임주체인식)를 갖춰야 한다. 상담자를 지도자(LEADER)로 볼 때는 Listening-Education– Discussion(Dialogue)- Evaluation-Responsibility로 해자(觧字)할 수 있고 FAMILY대화법은 Friendly(친근하게) Attentive(귀 기울임) Me too(동의/공감) Interest(관심) Look(시선집중) You are centered(내담자중심)로 설명할 수도 있다. 또한 Arthur Lines는 상담자의 역할을 10가지로 요약했는데 ⓵어버이(parent) ⓶코치(coach) ⓷과학자(scientist) ⓸비평가(critic) ⓹이야기꾼(story-teller) ⓺내담자의 자원을 찾아주는 예술가(artist) ⓻비전을 심어주는 자(visionary) ⓼변화를 선도하는 혁신가(revolutionary) ⓽치유자(therapist) 및 ⓾자신을 내어주는 목회자(minister)역할 등이다. 인간을 목적가치로 다루고 각자의 개성(개인차)을 존중하며 인간에 대해 긍정적-낙관적으로 보고 변화가능성을 기대하며 만족한 역할수행자(fully functioning person)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주는 활동이 ‘相’의 내용이다. 둘째 담(談)에 대해 알아보자 communication(소통)은 관계 갖기와 피차간에 변화를 발생-촉진-결실 맺게 하는 유효한 활동이다. 상담은 돈이나 약이나 주사를 주는 게 아니다. 말을 주고받는 언어교환 및 언어예술이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동냥은 못주나마 쪽박은 깨지마라. 때에 맞은 말 한마디는 은쟁반에 담겨진 금사과다 (잠25:1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그치게 한다”(잠15:1)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口是禍之門(입은 화를 부르는 문), 이나 舌底有斧(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대화의 역기능(부작용)을 경계하고 있다. ‘대화’를 대놓고 화내는 것으로 악용(남용)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나무가 기억하는 것을 도끼는 잊어버린다(The axe forgets what the tree remembers)” “사람은 입에 도끼를 물고 태어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도끼로 자신을 벤다”를 기억해야 한다. 상담자들이 보다 따뜻하고 함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망원경-현미경-내시경을 동원해 ‘大觀細察’, 하려면 격언(명언, 잠언, 속담)과 아름다운 시를 많이 읽고 외워두는 것이 필요하다 “빈자루는 홀로 설 수 없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지 마라.” “숟가락은 늘 국물 속에 있지만 국 맛을 모른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 대해서도 향기를 풍긴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짠 바닷물 속에 살아도 자기 몸속을 짜게 하지 않는다” “위로만 크는 나무는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홀로 서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高樹靡陰 獨木不林), “기둥이야 어찌되든 내 목침부터 자르고 본다”(不爲棟樑 先折木枕) “말로 농사짓는 사람은 많아도 손수 쟁기를 잡는 사람은 적다”(言耕者衆 執耒者寡) “까치발로는 오래 설 수 없고 벌린 발로는 멀리 갈 수 없다”(企者不立 跨者不行) ⓵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들꽃(I)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들꽃II/나태주), ⓶“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낙화) ⓷“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못 본/ 그 꽃”(고은) ⓸“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 내 마음 속에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나태주/행복) ⓹“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정호승/꽃을 보려면) ⓺“본질에는 일치를/비본질은 다양성을/이도저도 아닌 것은 자유를/단순한 삶은 정적, 검소 절제, 나눔” “어제는 역사, 내일은 신비, 오늘은 선물(present)”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노래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항상 새로운 가지가 솟아난다” 이는 이조증엽 상촌 申欽/1566-1628)의 시이다. 한번 상담전문가면 평생을 상담종사자로 종신하는 일편단심 민들레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묵은 솔이 광솔이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노인은 지름길을 알고 있다.” “Bloody revolution, peaceful evolution”을 2017년도 상담학회의 화두로 생각해보고 싶다.

    박 태 수  박 사 한국상담학회 제5대 회장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필자가 상담전문가로 활동한지 어언 30여년이 되었다. 상담의 대상인 내담자를 만나면서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만날 수 있었다. 내담자를 보면서 상담자인 나를 보았다. 청소년, 중년, 노년기의 다양한 삶에서 겪는 이들의 아픔을 만나면서 ‘이것이 바로 인생이구나.’ 하는 깨달음도 일어났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다보니 자연 내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며, 누군가의 인생문제를 제대로 돕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상담활동을 하면서 행하고 있는 명상수행은 나라고 하는 개인을 넘어 초개인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의식의 확대로 이어졌다. 명상은 상담과 함께 내 인생의 안내자이다. 알다시피 상담은 내담자가 그의 삶의 과정에서 겪는 심리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때, 그 분야의 전문가인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반면에 명상은 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놓치지 않고 알아차림으로써 평화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상담은 개인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여 행복하게 하는 것이요, 명상은 개인의 삶을 스스로 바라보고 통찰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상담활동보다 명상활동이 더 많아졌다. 타인을 도와주는 상담활동의 기회가 적어지면서 자신을 위한 명상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명상은 자신을 위한 활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위한 만남으로 확대되어 감을 알 수 있었다. 필자의 세상을 위한 만남은 명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2006년 1월 1일 새벽, 인도 비하르 요가대학에서의 아침명상은 나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명상상태로 들어가자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면서 문득 ‘내 나이가 벌써 60이구나.’ 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가 살 나이를 가지고 나오지. 그 나이가 60이야”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 나이를 다 살았구나. 앞으로는 남의 나이를 살게 되겠네. 남의 나이로 살면서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도둑의 심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잠시 뒤 ‘그럼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살아야겠구나.’라는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정년 이후 나를 위해 명상센터를 짓겠다고 사 놓은 땅을 관계의 확장인 세상에 내 놓기로 하고 사단법인 제주국제명상센터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의 삶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관계는 명상을 통해 더욱 빛난다. Janet Surrey(1991)는 그의 ‘관계문화 이론’에서 “명상은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명상은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대화과정에서 명상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감정, 생각, 기억을 말하는 동안 그 말을 듣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 순간순간의 현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명상하는 사람은 이러한 순간의 지각을 상대를 돕는데 사용한다. 이것은 상대의 살아있는 실재, 즉 상대의 말이나 목소리, 감정, 신체언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자기’self-in-connection에 대한 통찰은 상대의 자기실현을 증진시킨다. 상대가 지나치거나 부끄럽지 않게 하고, 수용과 함께 현재에 존재하기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순간의 진실에 머무르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는 관계적인 이미지나 자기를 한정시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자기와 타인에 대한 고정된 관념에 집착했다면 그 관념에서 벗어나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명상은 상담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과정에서 나의 성장과 타인의 변화를 도와 양자의 탁월함을 발휘하도록 한다. 21세기에는 영성의 시대가 도래 한다고 한다. 한국상담학회도 상담활동을 하면서 명상을 하는 의식의 확대로 나아간다면 나를 소중히 여기되 나를 넘어 세상과의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김계현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제2대 회장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상담학회 회원 2만 3천 명. 우리가 2000년도에 상담학회를 설립할 당시 상상했던 수치를 크게 넘어선 숫자이다. 상담학회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 앞으로는 질적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상담학의 질적 성장을 위한 미래 과제를 제시한다.   1. 실무(임상적) 트레이닝 기능을 수행하는 대형 상담센터 지금 우리나라에는 공공 혹은 사설 개업, 교육기관이나 기업체에 연계된 많은 상담센터들이 존재하며, 그중 어떤 상담센터들은 상담전문가를 지향하는 수련생들에게 트레이닝을 제공한다. 그리고 학회에서는 교육훈련 기능의 질을 심사하여 그 센터에 대하여 학회의 인정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즈니스 모델에 입각한 상담센터 프렌차이즈가 새로이 시도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상담 서비스 실무의 현재 모습이며, 30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었다. 실무가 발전하면 그것에 맞추어서 교육훈련 즉 트레이닝도 따라서 발전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센터의 교육훈련 기능을 좀더 고도화, 전문화, 체계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도 몇 몇 센터들은 ‘인턴쉽’ 과정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석사를 방금 취득한 사람들에게 소정의 실무적 트레이닝을 제공하고 그 훈련 경력은 초급 수준의 자격 취득에 근거로 사용된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고도화와 전문화는 인턴쉽 이상의 트레이닝 과정 즉 상위급(1급) 자격 취득에 필요한 교육훈련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학회의 1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들이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그것은 개인상담 몇시간, 집단 상담 몇시간, 수퍼비전 몇시간 등 시간의 량을 규정할 뿐, ‘어떤 내용을 교육받고 트레이닝 받을 것인지’를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1급 수준의 자격 즉 상위급 전문가가 되기 위한 수련의 내용은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표현하기에는 매우 복잡하고, 고도화되어 있다. 오히려 그런 수련을 제공할 수 있는 센터의 규모와 시설, 전문가의 인원수와 전문 영역의 구성, 센터가 소화할 수 있는 내담자의 수, 내담자에게 제공되는 진단과 상담 서비스의 종류, 전공 수련생의 임무와 보수, 수련 시간과 기간, 수련의 내용 등을 상세히 기술할 수 있을 때 그 센터가 전문가 트레이닝을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심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센터는 의료기관에 비유하면 대학병원 수준의 종합병원과 유사할 듯하다. 우리 상담학계에서 이런 대형 센터가 설립되고 운영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우리 상담인들이 꼭 이루어내어야 할 첫 번쩨 것은 바로 이런 형태의 대규모 센터(임상 실무와 교육을 겸하는)가 아닐까 생각된다.   2. 기초 연구 수행 상담학에서 기초 연구란 무엇을 뜻할까?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대답은 없다. 다만, 상담학에서의 기초 연구라는 그림을 수십 장 그려 볼 수 있다면, 여기서 그중 한 장, 혹은 한 장의 일부를 그려보고자 한다. 상담학에서 오랜 시간동안 아주 소중하게 여기던 개념과 현상들이 있다. 예를 들면, 통찰, 알아차림, 공감 받음, 수용, 이완(긴장의 반대) 상태, 자존감과 자기효능감 등이 그것들이다. 수용을 예로 들어보자. 수용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수용하는 상태로 변화하였다면, (1) 그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2) 그런 변화에 상응하는 신경학적, 생리적 현상은 무엇인가? 수용 이외에, 용서, 후회, 실망, 자존감 회복, 공감 받음 등은 어떠한가? 상담학의 모든 논문이 기초 연구에 의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분야가 오랜 기간 발전하려면 기초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상담학연구 즉 학술지는 논문으로 넘쳐나지만 그중에 기초 연구에 해당되는 논문은 발견하기 어렵다. 상담학 연구지의 최근호들은 “무슨무슨 매개효과”라는 제목의 논문들로 넘쳐나지만 막상 그 매개의 메커니즘을 말하는 논문은 거의 없다. “무슨무슨 검사의 타당화”라는 제목의 논문도 많지만 그 검사의 타당성을 제대로 밝히는(왜 타당한 검사인지를 주장하는) 논문은 극히 드물다. 어떻게 하면 우리 상담학계에도 기초 연구가 수행될 수 있을까? 상담 연구자들의 집중적인 반성과 토론이 필요한 시기이다.   3. 세부 전공 지정 우리는 상담학회 내에 분과학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는 세부 전공으로 적합해 보이는 것이 있기도 하고, 적합해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즉, 분과학회로서 설립되고 운영될 타당한 사유가 충분하지만, 그것이 대학 내 상담학과의 세부 전공이나, 종합 상담센터의 하부 조직으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상담학에는 career development를 중심 개념으로 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진로, 직업, 생애개발, 경력개발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영역들이다. 현재 많은 대학들은 대학 내에 심리상담을 주로 수행하는 센터와 진로지도나 직업상담을 수행하는 센터를 구분해서 운영하는데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즉, 진로지도-직업상담-생애개발상담은 하나의 세부 전공으로 간주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섣부른 제안을 한다면, 세부전공을 일단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 방안에 대하여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1)심리치료상담, (2)진로-직업-생애개발 상담, (3)진단 및 검사, (4)상담 정책과 경영. 세부 전공 지정은 대학의 상담학과 내부의 세부 전공과, 앞에서 언급한 종합 상담센터의 세부 전공(조직) 두가지가 있다. 이 세부 전공을 지정하는 사안은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일종의 “뜨거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학회 내에서만도 각 분과학회 간의 견해 차이가 드러날 것이며,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크고 작은, 민감한 쟁점들이 드러나고, 논의되고, 정리가 되어가는 모습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상담학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현대 사회에 걸맞는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이들 세 가지 즉, (1)교육기능을 동반한 종합 상담센터, (2)기초 상담학 연구, (3)세부 전공 지정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여겨지며,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상담자다. 내 기억으로,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이런 나의 정체성을 마음에서 놓아버린 적이 없다. 상담자를 교육하는 교수직으로 일하면서 또 수퍼바이저로 일하면서, 상담에서 어려운 순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양한 질문들을 접했다. 상담자로서 살아오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25년째 상담을 해 오면서 이러한 순간들을 넘어왔고 지금도 그러한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상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어려운 순간은 석사과정 중 만난 나의 첫 내담자가 상담 중에 화가 치밀어 책상을 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주먹을 쥐던 순간이었다. 당황스럽고 무서웠던 마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상담에서 어려운 순간은 다양하게 있었다. 많은 상담자들이 어려운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상황들이기도 하다. 내담자가 길게 침묵을 하는 순간,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등 역전이의 감정들에 사로잡힐 때, 내담자가 분노가 격앙되는 장면들, 부부를 함께 상담하면서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순간, 내 앞에서 부모와 아이가 심하게 다투는 일, 한밤중에도 이른 아침에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서 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것 같은 부담감이 들 때...... 안타깝게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내가 예전에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어떻게 이겨왔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내담자를 기다리면서 나는 소망한다. 내담자와 있는 순간에 내가 내 온 존재로서 충분히 함께 머무르고 그러면서 알아차려지는 것에 민감할 수 있기를,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내담자와 나에게 윈윈이 되는 상생의 것이 되기를, 내가 내담자의 삶을 존중과 경외의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상담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이 올 때 나는 그 순간의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잘 들여다본다. 그렇게 내 감정을 알아주면 나는 안정되고 여유를 찾아서 그 여유로 내담자의 감정을 편안하게 알아차리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담자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가 느낀 감정이 내담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일으킬 그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거기까지 이르면 나는 ‘잘 안 전달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나 ‘내담자가 불쾌해지거나 해서 라포를 손상시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넘어서, 온 우주에 나와 내담자만이 존재하듯이, 내 온 몸과 마음을 내담자에게 던지는 심정으로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나는 내담자의 눈을 통해 내담자 속으로 들어가 내담자 마음 깊숙한 곳에 내 마음의 메시지를 넣어두고 돌아오는 심정으로 피드백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피드백을 온마음, 온몸, 온존재로서 건넬 때 내담자 역시 그런 존재 차원에서 잘 받는 것 같다. 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오지 않는 것이기에 더더욱 이것이 되는 그 순간이 몹시 귀하다. 내가 상담자로 살아가는 삶을 가진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내담자와 헤어지고 나면 나는 또 소망한다. 내담자의 삶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잘 장착되고 작동하기를, 상담하는 동안 내가 그것을 목격하지는 못 하더라도, 한참 후가 되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작동하기를, 그래서 내담자의 마음에 더 활짝 봄이 오기를. 상담자로서의 삶은 축복이다. 내담자의 마음에 봄이 오는 여정을 함께 하고 내담자의 삶이라는 놀라운 소우주와 만나는 일, 그 가운데에 내 자신의 삶에도 자꾸만 봄이 오는 일. 모두 다 놓아두고 소망만 품고 용기있게 내 전체를 던질 때 일어나는 일. 상담자라서 참 좋다. 이윤주 교수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한국상담학회 기업상담학회장 한국상담학회 학회지편집위원장  

    김장회 박사 경상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교육연수위원장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오랫동안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그리고 똑 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들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그 길을 걷다 보면,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낙엽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 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의 일부이다. 어려운 결정의 순간마다, 감정을 추스르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준 빛나는 문장들이다. 시의 원제는 ‘The road not taken’이다.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가보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 등으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인식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서 상담자의 시선에서는 ‘선택하지 않은 길’ 쯤으로 번역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으며 선택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려 본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 표현, 익숙하다 못해 고루하게 읽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크게는 배우자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작게는 이 글을 읽을 것인지의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심지어는 이 글을 읽으면서도 계속 읽을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는가? 선택의 길목에서는 하나를 취하면 나머지 선택지는 버려야 한다. 선택해야 할 방향과 대상의 중요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른 부담감은 한층 높아진다. 선택은 곧 ‘버림’ 즉, ‘포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 혹은 포기의 순간에는 다양한 감정이 동반된다. 기쁨, 탄성,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불안, 후회, 안타까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선택과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선택하지 않은 길을 돌아보며 후회한다면 이는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기능적이다. 가설적이지만 선택을 X축, 책임을 Y축으로 하는 선택과 책임의 사사분면을 그려보자. 이렇게 하면 ‘선택하고 책임도 지는 사람’, ‘선택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 ‘선택하지 않고도 책임지는 사람’, ‘선택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의 네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선택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 선택하지 않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희생자나 수동 의존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다. 반면, 선택하고 책임도 지는 사람은 상담에서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유형이다. 자기 삶에 대한 온전한 책임의식은 물론, 주도적이고 실존적인 선택의 힘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은 생의 여정에서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선택과 책임의 건강한 힘을 발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문득,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나를 멈춰 세운다. 지금껏 달려온 길과 가려고 했던 길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며 잠시 책임감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껴 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내가 선택했던 이 길에 대하여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의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고, 나는 상담과 상담자의 길에서 참으로 행복했었노라고.  

권수영 교수 연세대학교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부회장 (사)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학회 회장   화창한 일요일 오후 나는 아내와 대학생 딸과 함께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했다. 영화는 내내 노무현 16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함께 겪어 온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낙선을 거듭해 온 비주류 정치인의 오뚝이 같은 대역전극을 보여주려는 의도로구나 싶은데, 그런 예상은 금세 빗나가고 만다. (아래 글에는 영화에 대한 아주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직접 보실 분은 이 점 유의하시길!)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관객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왜 일까? 불의를 향한 정의감에 불타는 인권변호사 출신, 강직한 대통령의 부릅뜬 눈에 넌지시 내비치는 슬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를 허탈하게 떠나보낸 측근들도 내내 애써 웃어가며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태연하게 소개했지만, 순간순간 진한 상실과 회한의 아픔이 묻어나왔다. 최측근 정치인 중 한 명은 역사 속의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할 뿐, 평소에는 애써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그에게 꼭 얘기해 주고 싶었다. 누군가와는 은밀하게 만나서 인간 노무현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준비된 전문 상담사를 찾아서라도 꼭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인터뷰 중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 중학생 노무현이 학비를 내지 못해 담임교사에게 빰을 맞고 학업을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전한 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가 어린 노무현을 안아주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영화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안에서 빰을 맞고 돌아서는 ‘중학생 노무현’이 보였다. 그는 청와대에서 귀빈을 만날 때, 좋아하는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마셨다고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늘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술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청와대의 참모마저도 대통령이 실은 술을 잘 마신다는 사실을 퇴임 이후에나 알았다고 했다. 그에게 청와대는 어쩌면 외로운 전쟁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순간 어느 상담 전문가가 청와대에서 그 외로운 ‘중학생 노무현’을 만나 눈 맞춰 주고,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우리 한국상담학회는 다른 여러 단체들과 함께 <전문상담진흥법>의 국민청원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상담(counseling) 운동은 애초부터 진단 받은 환자를 위한 정신의학과의 치료행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욕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담은 과감하게 무력한 환자(patient)라는 단어마저 긍정적인 자원을 가진 고객(client)으로 바꿔 불렀다. 상담의 접근은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상처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하게 한다. 어쩌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야말로 이런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을 더 잘 섬기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대학가에서 틈만 나면 불러대는 노래가 있었다. 그 날이 오면/그 날이 오면/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그 아픈 추억도/아 짧았던 내 젊음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아 피 맺힌 그 기다림도/헛된 꿈이 아니었으리/그 날이 오면...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아픔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상담 전문가를 때때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기 이전에, 내면의 상실과 아픔을 안고 살아온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혁명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대통령이 먼저 때때로 상담을 받는 그 날이 오면, 모든 공직자들과 직업군인, 그리고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상담을 받고, 온 국민과 학생들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 날이 속히 오지 않을까? 이런 나의 꿈이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따라 유난히 <그 날이 오면> 노래가 부르고 싶어진다.    

  김인규 박사 전주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부회장 (사)한국상담학회 학교상담학회 회장 (사)한국상담학회 전북상담학회 회장 전국상담학과협의회 회장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발 하라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후속 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과목은 감정지능(Emotional Intelligence)'과 '마음의 균형(Mental Balance)'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리·수학·미국역사 등 개별 과목은 AI가 훨씬 더 잘 할 것이기 때문에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지금까지는 중․고․대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평생 먹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평생 4~5개 이상의 직업을 바꿔가며 살 것이고 이를 위해 60,70대에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슨 분야가 유망할 것이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을 배우고 어떤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안정된 삶을 보장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변화를 수용하고 안정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 즉 마음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 지능’과 ‘마음의 균형’은 미래사회를 살아갈 후속세대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1)는 미래사회에서 어떤 직업이 컴퓨터에 의해 대치될 가능성이 낮은지를 살펴보았는데 그 결론은 해당 직업에서 독창성, 사회적 민감성, 협상, 설득, 타인을 돕고 돌보기 같은 것들이 요구되는 수준이 높을수록 그 직업은 컴퓨터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독창성(Originality)은 주어진 주제나 상황에 대해 특이하거나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는 능력,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회적 민감성(Social Perceptiveness )은 타인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이며, 협상(Negotiation)은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서로간의 차이를 조정하려고 노력하는 능력이다. 설득(Persuasion)은 다른 사람들이 마음이나 행동을 바꾸게 의사소통하는 능력이며, 타인을 돕고 돌보기(Assisting and Caring for Others)는 동료, 고객, 환자 같은 타인에게 개인적 도움, 치료, 감정적 지지, 기타의 개인적 도움을 제공하는 능력이다. 가난이 경감됐을 때 줄어드는 심리적 고통은 5%에 불과하지만 심리적 장애를 치료했을 때 심리적 고통이 20%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가난과 취업, 신체건강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우울, 트라우마, 정서 학대, 사이버 폭력 등 정신건강과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서구의 여러 국가가 경제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가 꾸준히 낮아지는 원인은 개개인의 정신적 건강과 인간관계를 지키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행복한 성인의 삶은 어린 시절 ‘학업의 자질’이 아닌 ‘정신적 건강’에 기초한다. 이제 국가의 새로운 역할은 국민의 부를 창조하는 것 보다는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심리적 안정과 성숙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둔 교육을 통해 미래사회를 준비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 1) Carl Benedikt Frey & Michael A. Osborne (2013). The Future of Employment: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sation. working paper of Oxford Martin School. University of Oxford.

  천성문 박사 (사)한국상담학회 회장 경성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요즘 우리 사회에는 살인, 폭행, 강간 등 우리를 경악케 하는 흉악 범죄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고 학교 주변 또한 우리의 자녀를 안심하고 키우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개인 간, 집단 간의 분노와 공격성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분노와 공격성의 배경에는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나 주변 환경의 영향이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키우려고 하지만 부모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양육은 없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좋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온전하게 살리지 못하고 어느 정도 일그러진 모습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상담현장에서 자주 겪는 일로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적게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회의를 품게 된다. 부모의 차가운 성격 때문에 또는 남의 손에서 자라야 했기 때문에 소외감을 많이 느끼면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질 수 있다. 부모에게 과잉보호를 받았거나, 반대로 항상 의견을 무시당했거나, 혹은 부모가 형제 중의 누구를 특히 편애하여 상대적으로 밀려났거나 언제나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고 자랐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렇게 배척감이나 소외감에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조그마한 부분을 남들로부터 지적받아도 질겁을 하고 어떻게 하든 극구 변명을 하거나 회피하려고 애를 쓴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현실과 먼 이상적인 자기를 가정해 놓고 그 이상에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잘 안되면 자신을 공격하는 자학을 일삼는 경우도 있고 늘 남 앞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아야 안심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두가 어찌 보면 자존심의 결핍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자기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남으로부터 존중받으려고 할 때 자존심은 형편없이 약해진다. 또한 남으로부터의 존중이 좌절되면 남에게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게 된다. 사람은 커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의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며 사회적 책임과 권리를 배운다. 이러한 능력은 저절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공동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되며 그럼으로써 공격성도 순화되고 정서적, 신체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 간, 집단 간의 분노와 공격성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사회적인 불평등과 차별적인 요인을 해소하여 갈등을 줄이는 사회제도적 개선과 함께 개인적 차원에는 진정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에서 그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스스로를 배척하고 멸시하고 우습게보면서 타인은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해 달라는 것은 모순이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남의 의견에 쓸데없이 시달리면서 적대감을 갖지 않으려면 확고하고 일정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남이 자신을 비판할 때 그 내용이 일리가 있고 자신도 미리 몰랐던 부분을 지적해 준 것이라면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와는 반대로 지적해 준 내용이 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왜곡되었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거나 해서 그 사람의 문제로 볼 것이지 자신이 그 말에 좌지우지되어 애달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상대에 따라 꾸짖거나 용서하는 것이 내 중심이 되어 자유자재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존심의 회복이 아닐까.  

  어린 시절 얌전한 소꿉놀이보다 뛰어다니길 좋아했다. 문을 닫다가 유리창을 깨트리고, 우산을 던지고 받다가 이마에 찍히고, 넘어져서 깨어지고. 실컷 타보지도 내 것으로 가져보지도 못했지만, 얼어붙은 강 위에서 타는 썰매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발바닥이 시커메지도록 돌아다니다 집에 오면 어머니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했다. 많이 혼나다 보니 ‘나는 왜 이럴까?’ 궁금해졌고, ‘나는 무엇인가?’ 탐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좋은지 싫은지, 이쪽인지 저쪽인지, 나를 명명하는 것도 때로는 혼란스럽다. 나를 무어라 할 것인가? Frued의 관점에서 oedipus시기의 억압된 리비도로 인한 성 역할의 혼미라 할 것인가?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강화로 인한 이상행동의 학습이라 할 것인가? 무어라 명명하기 이전의 것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하는 것은 탐구의 본능이다. 상담자가 되어 세월이 지날수록 어려운 내담자를 만난다. 성격장애 진단명을 듣고 막막해하는 내담자들의 과거와 현재가 무난할 리 없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담자들과 함께 하다보면 원점으로 돌아가 경험들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어린 시절, 영아기, 태아기, 그리고 그 전에 어디에서 왔는지 탐색해본다. 보통은 그러하다. 그런데 어떤 성격장애로도 명명하기 어려운 내담자를 만나면 그런 방법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흔히 성격장애는 고쳐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안타까운 견해도 만난다. 현실적으로 내담자들은 교과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고, 책에서 설명하는 대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어릴 때 썰매 좀 타본 사람은 실전이 이론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느 한 편이 되어야 따돌려지지 않을 세상에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카톨릭 유치원, 기독교 중학교와 원불교 고등학교, 기독교 대학교와 석사과정, 힌두교 박사과정을 거쳐 지금은 유대교를 탐구하다보니 모든 곳에서 따돌려지는 외로움과 어느 한 편에 속하고 싶지 않은 고집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드러난 모든 것에서 이상한 시선을 받더라도 본질로 향하는 경험에 살며시 미소 지어지는 기쁨에 이르지 않고서는 계속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의 상태가 그러한다. 그런데 자신의 근원을 보는 눈이 생긴다면 어떨까. Jung은 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을 제4세력 심리학이라 하였다. 초월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세상에 드러난 몸, 그 내면의 마음, 생명의 영혼, 그리고 영성의 존재로 본다. 영성은 종교의 신앙심과 같고, 드러난 형태는 기독교, 불교, 카톨릭이나, 그 내면에서 추구하는 것은 근원을 향하는 한 가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 것은 맞고 네 것은 틀리다는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히 존재하며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으나 존재하는 에너지를 만든다. 초월영성상담의 관점에서 모든 경험 이전의 우리는 경험 없음으로부터 왔다. 영화가 비춰지는 배경 스크린 같은 그 상태를 순수, 공, 무, 본질이라 한다. 카발라에서는 무한의 세계Infinity에서 시작한 모든 존재는 발산의 세계Azilut를 기초로 하여, 창조의 세계Bria, 형성의 세계Yetzirah, 그리고 현현의 세계Assiah로 세상에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 어떠했든 그 본질은 순수, 셀프Self, 아트만Atman, 아찔루트Azilut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고 산다. 세상으로 드러난 모습에 동일시하고, 남이 붙여준 이름을 받아들이며, 그 이름의 모양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쉽다. 내담자들은 본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담자들이 증상과 본질을 동일시하는 동안 나아지기는 어렵다. 물질은 보는 자의 눈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움직이기에, 상담자들도 내담자의 진단명을 붙들고 걱정하는 동안에는 내담자가 변하는 기적 같은 경험이 쉽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어떤 것도 괜찮다는 수용적 관점에서 시작된다. 상담자의 눈이 드러난 현상에 사로잡히지만 않고 본질을 본다면 내담자의 세포는 다르게 반응할 것이다. 우리가 정한 개념에 너무 일찍 합의하고, 우리가 정한 약속 안에 본질은 잊은 채 꼬리표를 달기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호기심으로 그래도 괜찮다는 수용적 자세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믿었던 땅이 흔들리고 심지어 꺼지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한 줌의 믿음을 움켜쥐고 한 편이 되어 한 편 끼리 성을 쌓아야 안심한다. 한 줌 믿음이 흔들릴수록 한 편들은 많아지고, 땅은 흔들리는데 성은 높아만 간다. 성 쌓기를 멈추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불안을 바라보고, 움켜쥔 손을 풀어놓아 근원을 향하게 한다면 개인적 삶이든, 상담이든, 학회든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선 화   회 장 한국상담학회 초월영성상담학회 우리들심리상담센터

  가끔은 내가 이러려고 상담자가 되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상담전문가’라는 대답이 떠오르고, 남은 생애를 상담자로서의 삶으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에는 살짝 전율이 느껴지는 감사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교수님들이 세익스피어, 버지니아 울프, 엘리엇 등 배우는 작품마다, 그 속에 녹아있는 “휴매니티”를 찾으라는 과제를 내주시곤 하였는데, 도대체 작가가 인간을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혹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저녁 설거지를 왠지 나에게 시킬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서도 못 본 척하며 교과서나 소설책을 들고서 책상 쪽으로 가면, 엄마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지”하며 혀를 차시곤 했는데, 우습게도 그런 날 밤에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한참이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인간적이지 못한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적으로 사는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일컫는 것일까? 하는 윤리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스스로는 도무지 답을 짐작조차 못하던 나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원과정에서 상담이론의 인간관들을 배우면서 내가 살아갈 길을 찾은 것 같은 안도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감사기도를 한참이나 드리기도 하였다.   상담 실제를 배우면서 공감과 수용이라는 세계가 황홀하기는 하였지만, 내 입에서는 너무나 낯설어서 [상담연습 교본] 뒷장의 답을 옮겨 적고 무작정 외우고,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장성한 작은 딸아이가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루고 시무룩해 있을 때, “중학교 시험이 어렵기는 어려운가보구나”라고 결혼 전 대학원 시절에 외어둔 수용의 예제 답을 비로소 적용해 볼 만한 상황이라서 한 번 그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아이가 조잘 조잘 자신의 깊은 고민과 미래의 포부까지 신나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담공부에 야금야금 들어간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뒤늦게 상담전문가 자격을 받게 되고, 매일 내담자들을 만나는 직장도 가지게 되었는데, 뒤돌아보면 대학원 석박사과정과 별도로 시행되는 각 종 심리검사 교육, 초급부터 고급까지의 세분화된 단계를 거치며 배워가는 다양한 상담이론과 기법 교육 등을 배우러 다니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새벽 기차를 타고 상담교육 장소, 사례 수퍼비젼 모임, 며칠간의 집단상담 등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의 낮선 주소지를 찾아다니며 학회의 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마치는 날이 과연 올까 의심하던 시간도 상당히 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에서 나 자신의 성장과 치유가 이루어져 갔고, 다양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만날 준비가 이루어져 갔기에 지금도 그 시간들은 소중하게만 여겨진다.   이제는 좋은 상담자, 유능한 상담자가 되려는 마음보다 내담자를 위로하고 새로운 삶의 세계로 초대하는 좋은 상담을 하고 싶은 바램이 남아있다. 내담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가깝고도 중요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가 힘을 얻는 경우가 언제 있었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가 부모형제를 생각할 때, 힘을 얻기보다는 근심과 걱정 혹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이 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기댈 곳이 없어서 느끼는 무력감, 슬픔, 분노의 정서들에 침잠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상담자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유롭고 안녕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 아마도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어 다시금 우뚝 서서 내 삶을 뚜벅뚜벅 살아낼 수 있었듯이 나도 상담자로서 쓰러질 듯 흔들리는 내담자에게 마음의 손을 내어 줌으로써 그가 그 순간 무너지지 않고 바로 서서 이후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에, 상담전문가의 삶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것 같다.   최승애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집단상담학회장 포항공과대학교 상담교수 최승애심리상담센터 소장        

  최근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불법 도박문제가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물론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유명 선수나 연예인의 도박 사건이 보도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잠시 그 사건을 살펴보다가 곧 관심을 거둔다. 내가 고민한다고 사라질 문제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대다수 중 한명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 조카가, 혹은 내 아들이나 딸이, 아니면 내 손주들이 불법 도박을 해 본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땐 어떨까?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냐고 되물을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우리 청소년들은 이미 불법 도박에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불법 도박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지금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서 ‘청소년 도박’을 검색 해보면 ‘10대 청소년들이 억대 물품사기 행각을 버렸는데, 그 이유가 인터넷 도박 자금 마련 때문’이라는 기사나 ‘10대 청소년 낀 가짜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 일당 검거’ 등의 기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왔다. 2009년에 대전, 2013년에 광주, 그리고 2014년에 제주 지역에서 각각 859명(대전), 2,000명(광주), 675명(제주)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도박 경험 및 도박문제 심각성에 대한 조사연구가 수행되었는데, 그 결과를 종합하면 조사에 참여한 청소년의 73~92%가 한 종류 이상 도박성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 중 8.1~36.6% 가량이 경미한 수준의 도박문제를, 3~9% 가량이 심각한 수준의 도박중독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매우 보수적으로 해석해서 약 3%의 청소년들이 위험 수준의 도박문제를 가진 것으로 추산한다면 그 숫자는 약 10만 명(통계청 추계 2015년 중/고생 336만명 기준)에 이른다. 이런 저런 것도 다 믿어지지 않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가까이에 있는 청소년을 붙잡고 한번 물어보시라. 단, ‘너 인터넷 도박 해 본적 있어?’라고 물으면 당연히 없다고 할 테니, ‘주변 친구들 중에 인터넷으로 스포츠 베팅 해봤거나 사다리, 달팽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 있어?’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마도 놀랄만한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청소년의 도박 행위가 초래하는 폐해는 심대하다. 우선 청소년의 도박 행위 자체가 불법이거니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를 위험성이 높아진다. 또한 청소년들이 도박에서 큰돈을 따는 경험을 하거나 잃고 따고를 반복하게 되면 건전한 근로의식이나 경제관념이 손상되고 인생의 방향이 도박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독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도박에 빠져드는 중독 문제를 ‘뇌 질병’으로 규정하며 개인 수준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내려 시도하지만 이는 청소년 도박문제를 다루는데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청소년 도박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청소년 본인이 아닌 우리 어른들이 책임져야할 문제다. 청소년들을 경쟁에 내몰아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게 만들어 놓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청소년을 유혹하는 불법 도박을 방치한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바로 청소년들을 불법 도박시장으로 내몰아 중독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데 전문성이 있는 우리 상담 분야의 전문가들이 청소년 도박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보급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구체적인 실천은 오늘 우리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곁에 청소년이 있다면 꼭 한번 물어보시라! 주변에 도박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너도 해보고 싶지 않았는지, 그리고 혹시 해 본적 있는지. 만약 도박을 해봤거나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 청소년을 심리적 안전지대로 이동시켜야 한다(전문가의 도움은 국가에서 설립한 도박문제관리센터에 문의(전화번호 1336; 24시간 운영)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실천이다.   권선중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감독감시분과 위원

  가끔 지인들의 카톡 상태글을 살펴본다. 이 글은 무슨 의미일까, 이 사람은 잘 지내고 있는 건가, 이런 글귀는 지금 무슨 마음으로 올린걸까... 상태글을 보면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내 상태글은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안다네’이다. 살면서 이제 더는 미루거나 지금 아닌 다음을 기다리거나, 더는 후회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올린 글이다. 뭔가를 결정할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완벽한 결과를 기대하려니 그때의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 다음에, 또 다음이 있겠지 하며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점점 나이듦을 경험하면서 다음이라는 말을 기대하는게 쉽지 않게 되었다.   주변은 활짝핀 벚꽃으로 환하다. 사계절 중에서 봄맞이가 가장 드라미틱한 것은 겨울의 칙칙함에서 화사함으로의 변화가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런 봄날에 나는 지인의 임종을 함께 하려고 병원에 있다. 호스피스 병동의 분위기는 밖의 화사한 풍경과 대조적이다.   호스피스 병동. 항암의 고통을 잊으려고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던 환자는 그 와중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 내가 자다가 추워하면 당신이 꼭 안아 주어요.” 그 말에 마주보며 함께 웃는 아내. 그 순간 잠깐 벚꽃을 보았다. 저 아저씨는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았을까? 한때 그도 오늘 같은 봄날처럼 찬란하게 건강한 삶을 살았겠지... 어려서 ‘마르셀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오붓하고 가까웠던 많은 추억을 함께 한 가족들이 세월이 흘러서 뿔뿔이 흩어지고, 죽음으로 곁을 떠나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   이제는 안다. 소멸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이렇듯 봄날은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아직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학회에 올리는 글 치고는 참 개인적이다. 나도 아직 이런 칼럼을 찾아서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혹여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긴 글로 설명하지 않더라고 그냥 지금의 내 마음, 봄날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잔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느긋하게 풀어져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꽃이 지기 전에 봄을 즐겨야겠다 이영선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학생위원장 건양대학교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

     ‘갑을 관계’, ‘갑질’, ‘을질’   이 단어들은 2010년대 들어 속칭 라면 상무라 불리는 포스코 임원의 기내 승무원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되기 시작된 신조어들입니다. ‘갑을관계’라는 말은 인간관계 구조를 규정하는 단어중 하나로서, ‘상하관계’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갑을관계’ 에 바탕을 둔 행위적 의미로서 ‘갑질’, ‘을질’이라는 신조어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갑질’, ‘을질’은 권리관계에 바탕을 두면서 ‘갑’에게 혹은 ‘을’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난 후, 일상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갑을관계’, ‘갑질’, ‘을질’ 등의 말을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와 같은 신조어들이 확산되는 것에 불편함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신조어들이 인간 사이의 배려와 수용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를 인간사이의 권력 혹은 상하관계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갑’이냐 ‘을’이냐에 상관없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수용과 존중의 마음가짐과 태도로 서로를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면 상무라 불리는 분도 그때의 상황에서 자신의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기내 승무원의 행동을 수용하고 존중해주었더라면 아마도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전에 의하면, ‘수용(受容)’은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이라 정의됩니다. 인본주의 상담에서 수용 또는 존중은 인간의 성장을 촉진하는 핵심적 요건이라고 하였고, 상담자가 지녀야할 인간적 자질중 하나로 언급하였습니다. 상담의 효과를 위해서 라포 형성 혹은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수용’의 가치는 더욱 더 큽니다. 한편, ‘수용성(受容性)’은 ‘어떠한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수용능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많이 긍정적이고 온정적으로 수용하려면 그만큼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내려면 그릇이 비워져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많이 비워져 있으면 있을수록 상대가 들어오고 상대를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의 ‘수용성’이 더 크게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자로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오랫동안 상담자로 일해 온 필자는 ‘수용’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많이 들어왔고, 상담 장면에서 수용적인 상담자로서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다양한 관계와 역할 속에서 ‘수용성’을 발휘하는 것은 상담 장면에서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근 대학 내 한 조직의 장으로 봉사하면서 내 틀을 버리고 내담자가 아닌 구성원들을 수용해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 자신의 틀을 버리고 혹은 내려놓고 상담자와 같은 ‘수용성’을 발휘하여 구성원들을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체험한 후 ‘수용’과 이를 위해서 ‘나를 버리고 비우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상담과 개인으로서의 일상을 분리하고픈 필자에게 ‘일상이 상담이고, 우리의 삶이 상담훈련의 장이구나’라는 것과 상담이 우리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최수미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연차학술대회위원장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전공 교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만일 지금 당신이 제가 쓴 이 글을 전혀 읽지도 않은 채로 닫아버렸는데, 마침 제가 곁에 있다가 그걸 보았다면 아마 저는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내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없어 보여서 읽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상심하고 도대체 이유가 뭘까 생각하느라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글이 당신에게는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고 당신은 그저 이러한 제목의 글을 아주 싫어하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쉽게 상심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이러한 거부감을 나 자신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까지 자동적으로 연결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읽고 싶어 할 만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할 겁니다. 그렇게 될 때, 저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수치심에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상한 나머지 내 글을 읽지 않는 당신에게서 이유를 찾아보거나 물어 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도 못합니다. 사실은, 이유가 당신에게 있을 수 있는 데도 말입니다. 당신이 상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칼럼 같은 글은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마음의 상처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주제 자체를 생각하는 것조차도 당신에게는 회피하고 싶은 것이어서 읽어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상한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나에게서 원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마음을 다친 분노 때문에 당신을 마구 깎아 내릴지도 모릅니다. 이 방면에는 도무지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이런 칼럼을 읽지 않고 그냥 치워버릴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투덜거리면서 말입니다. 내 글을 읽지 않은 대가로 당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거나 또 어쩌면, 복수심에서 집에 가는 길에 코앞에서 지하철을 놓쳐버리라고 악담을 할지도 모르고 여하튼 나의 기분은 엉망이 되고 마음은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고 습니다. 지금까지 설정한 위의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마음상함’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베르벨 바르데츠키(Barbel Wardetzki)라는 독일의 게슈탈트 상담심리학자가 “따귀맞은 영혼”이라는 책에서 설정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본 것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마음상함’이란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을 이르는데, 이러한 경험은 열등감이나 개인적인 모욕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상처는 우리의 자존감을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내면이 불안정해지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친다는 것은 얼굴에 따귀를 한 대 얻어맞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깊은 아픔을 주는 일격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야하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충격적인 거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마음 상함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우리를 향해 일어난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삶에서 수도 없이 다가옵니다. 물론 누군가가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것들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 조차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그녀는 설명합니다. 상대방이 우리를 깎아 내리고 마음을 다치게 하도록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켜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 앞에 속수무책으로 내팽겨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각을 바꾸게 되면, 똑같은 사건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나에게 만족을 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마음상함’이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상담의 목표가 마음상함을 완벽하게 극복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마음을 다치더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처하고 덜 파괴적인 방법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내담자를 도와주는 것이 상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혜숙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홍보위원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상담을 하고, 상담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상담은 삶을 디자인 하는 일이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나의 삶을 디자인 해왔고,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소소하게, 때로는 크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누군가에게 삶을 디자인 하는 힘을 줄 때도 있고, 디자인 초안을 그리는데 동참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이러한 복잡한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현미경에 대해 많은 상담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 가장 굵직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무엇이 나를 복잡하게 고민하게 했을까?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게 왜 복잡한 마음이 들고, 고민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 시점을 나누어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사실 상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매우 “용감”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해보니 이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덜컥 겁이 난 적도 있다. 나의 인생에서도 수시로 불청객인 방황과 혼란을 마주하는데 어찌 그리도 용감하게 내담자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했을까? 정말 너무 부끄럽고 자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상담을 하고 심지어 상담을 두려워했던 나로 변해갔다. 그 시점에서 나는 더 자기 비난을 자주 했다. ‘나는 상담자로 적합하지 않아, 나는 자기 마음도 챙기지 못하고 내담자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능한 상담자야’. 상담자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나로서 복잡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그리고 서서히 그 늪에서 빠져 나왔다. 자세한 과정을 생략하고 중요한 것을 짚어본다면 그 과정에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내 마음 속에 생겨난 현미경이다. 그 현미경이라는 것이 무엇이요? 누군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솔직히 나는 멋있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일단 상담에 대한 지식과 그리고 자기 성찰의 힘이라고 설명해본다. 지식과 태도의 복합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그 혼란의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려고 했는가, 사례에 어떻게 적용했는가? 이렇게 할 때와 저렇게 할 때 뭐가 달라지는가? 왜 달라지는가? 나의 신념과 가치로 내담자의 선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이 나만의 현미경이 되었고, 점차 발전하여 더 높은 배율의 현미경을 갖춰나갔다. 그 과정에서 혼란과 두려움은 현미경을 통해 나에게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지혜를 주었다. 많은 상담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자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공부하든, 실천적으로 적용하든 우리는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정신분석이나 도식치료 등 여러 이론에서 설명하는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담은 삶을 디자인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식과 삶을 연결해보는 연습, 즉 평범한 일상부터 다양한 상황, 장면에 대해 나만의 현미경을 만들고 다시 이를 이론적인 개념과 연결해보는 것이 더 진정한 공부가 되고, 더 큰 힘이 된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고 비슷한 질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답을 찾는지, 자신만의 방법이 무엇인지? 상담자로서 자신의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들은 분명히 자신만의 방법과 노력으로 그 힘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고홍월 교수 충남대학교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편집부위원장

  길게 느껴진 겨울이 가고, 벌써 2017년도 3월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수업준비, 여러 회의와 업무들 처리, 방학 때 야심차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으나 절반도 끝내지 못한 연구물들과 항상 현재 진행 중인 동시에 미해결 과제인 일과 가정간의 균형 잡는 문제 등을 생각하면 이렇게 화사한 봄날 마음 한켠은 여전히 한기가 느껴지는 겨울이다. 분명 즐거워서 행복해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해야 하는 일들이 되고 버겁게 느끼고 있음을 깨닫고, 문득, 처음 상담공부를 하고자 했을 때의 내 마음이 어떠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상담자로서의 경험이 관련 연구로 연결이 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활동을 더 깊이 있고 풍부하게 해주며, 그러한 연구자로서, 더불어 교육자로서의 경험들이 다시 상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드물게 세 가지 역할이 모두 서로 기능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한다는게 참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셋 중에 하나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고, 버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엄마가 된 거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육아가 평생 등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내려놓을 수 없는 짐처럼 느껴졌다. 마치, 십여 년 전 연애하고 결혼을 결심했을 때 성품이 안정적이라서 매력을 느끼고 좋아했던 배우자가, 어느 순간 섬세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것처럼. 그 때는 맞았고 옳고 좋았었던 이유가, 역할이, 그리고 사람이, 지금은 버겁고 힘들고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이 모순이라니. 무엇이 문제일까, 왜 같은 이유이고 같은 사람인데 내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게 변해버린 걸까. 그 때의 내 마음도 지금의 내 마음도 나인데 왠지 지금의 마음은 부끄럽고 숨기고 싶었다. 벗겨진 콩꺼풀이라면 줏어다가 다시 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 아니, 변하는게 당연하지 안 그래? 나의 변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서 변화가 생긴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상담자이자,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세 가지를 다 하는 것은 흥미로우나 세 가지 공을 한꺼번에 돌리는 저글링이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 듯, 쉽지 않은 점도 사실이고,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지만, 지인의 말대로 육아의 세계는 천국문과 지옥문이 동시에 열리는 느낌이라, 행복감과 동시에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시간들을 같이 경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자의 성품도 양면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무엇을 더 선택적으로 바라보고 선호하고 좋게 보았느냐의 문제일 뿐이란 생각이 들자, 조금 스스로에게 덜 비판적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달라지는 거나 변하는 건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현 상태인데, 나도 모르게 빠르게 작동되는 가치판단과 함께,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감정이나 태도는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달라진 내가 불편했었나보다. 내담자에게, 학생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좋고 나쁜 감정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막상 스스로는 하는 일, 역할, 그리고 관계 안에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고 부인하고 외면하고 숨기고 싶었다. 내 마음에 항상 날이 선선한 가을 아니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만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마치 사계절이 존재하듯,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그러다 다시 겨울이 오고, 아님 그냥 사계절 다 공존하기도 한다는 걸 받아들이자, 마음의 한기가 조금 가신다. 그래, 그 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지금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은 즐거우면서 동시에 슬프고, 힘들고, 짜증나고 화나고 무력감도 느끼고, 회의도 들고 그러면서도 행복하고 신나는 순간들이다. 지금 내 마음엔 사 계절이 다 들어 있다. 꽃피는 봄과 뜨거운 여름과 쓸쓸한 가을과 추운 겨울이 다 들어 있다.   신윤정 교수 (사) 한국상담학회 자격검정부위원장 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학습·상담 전공 교수

  얼마 전 6살이 된 첫째 아들의 새 운동화를 사러 갔다. 아이는 가게에 진열된 신발들을 한참 둘러보더니 유명한 슈퍼히어로 디자인에 불빛이 번쩍번쩍 하는 멋진 신발을 마음에 들어했다. 디자인은 골랐으니 다음은 아이의 발에 맞는 신발사이즈를 주문하면 되었다. 그런데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인지라 발도 금방 자랄 것이라 생각해 아이 발보다 한 치수 큰 200mm의 신발을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다음날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빛이 번쩍거리는 그 화려한 신발은 너무 무거워서 친구들과 달릴 때 불편했고, 사이즈도 너무 커서 신발이 자꾸 벗겨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혼자서 신고 벗기도 불편해했다. 기왕 새 신발을 샀으니 그 신발에 어떻게든 아이를 적응시켜 보려고 했지만, 결국 일주일 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신발가게에 갔다. 이번에는 유명 슈퍼히어로 디자인이 아닌, 끈도 찍찍이도 없으며, 아이의 발 사이즈에 딱 맞는 신발을 골랐다. 제 발에 꼭 맞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니 비로소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 일로 인해 문득 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상담자나 부모를 대상으로 강의할 때, 이만하면 ‘충분한(good enough) 엄마’, ‘이만하면 충분한 상담자’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런데 계속해서 느껴지는 것은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나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내 자신에 대해서 ‘이만하면 충분한 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참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이전에 나에게 열심을 다하게 한 동력은 ‘이만하면 충분한 나’가 아니라 다른데 있었던 것 같다. 내 어렸을 적 일기장에 이런 문장들이 무수히 적혀있다. ‘난 왜 ***처럼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난 왜 ***처럼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을까?’, ‘난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너무 못해’, ‘난 내 동생보다 머리가 나빠’, ‘난 성격도 착하지 않아.’ 이런 자기비난의 목소리들 뒤에는 늘 ‘그러니까 공부라도 잘해야 내가 살아갈 수 있겠구나.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내용이 뒤따랐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그 공부가 행복하지 않았고, 늘 우울했으며, 무언가 내 자신의 본 모습에서 멀어져 가게 되었다. 얼마 전 당시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그 친구들이 “여주 너 그때 엄청 예쁘고 착했잖아. 나 너 좋아했었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내가 정말 당시에 얼마나 내 자신을 수용하고 있지 못했는지, 얼마나 내 색깔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나의 장점을 발현하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아직 ‘이만하면 충분한 나’의 완성 단계의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완성의 경지라는 게 있을까?), 예전에 비해 생각이 좀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아직 너무 부족하니 이만큼 훌륭한 교수가 되어야 하고, 이만큼 강의를 잘 해야 하고, 이만큼 상담 성과가 좋아야 하고... 등의 생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생각은 없어졌다. 그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약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 안에 어떤 색깔을 숨기고 있는지, 어떤 씨앗이 더 자라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내 색깔, 씨앗, 또는 약점들이 발견될 때마다 ‘아 그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 색깔은 내 색깔 같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흐려졌구나. 이런 점 때문에 내가 힘들었구나. 와우, 나한테도 이런 씨앗이 있었나?’ 등을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열정이 사라져서 공부도 안하고 노력을 안 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만하면 충분한 나’로 내 자신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더 힘이 생기고 책을 읽는 몰입도도 강해지고 더 짜릿하게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성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굳이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경험담을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요새 계속 학생들을 수퍼비전을 하면서 느낀 점도 비슷하다. 많은 상담자들이 수퍼비전 자료를 준비하면서 자기 자신이 못한 부분에 대해 스스로를 마구 비난하고, 수퍼비전에 와서도 무척 괴로워한다. 더 좋은 상담자, 더 훌륭한 상담자(그게 뭐지?)가 되기 위해서 워크샵도 다니고, 훈련도 받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 노력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은 너무나 못난 상담자이기 때문에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그 말이 안타깝다. 그러한 모습은 내담자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된다. 어떻게든 내담자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힘쓰면서 상담을 끝나고 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한 수퍼바이지가 자기는 상담에서 들은 내용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서 한 회기가 끝나면 내담자가 얘기한 키워드를 적어서 일주일 동안 달달 외우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하기도 했다. 물론 그 노력도 의미 있다. 그러나 ‘훌륭한’ 상담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진짜 상담자로서의 내 모습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기회를 놓치고, 그것이 내담자와 진짜 만남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이렇게 말했다.   근원어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마르틴 부버 <나와너> 中 -   이러한 참만남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참만남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이만하면 충분한 나’를 수용하고, 내담자와의 만남 속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다시 더 뚜렷하게 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혹시 나는 상담자로서 나에게 맞지도 않은 ‘유명 슈퍼히어로 디자인에 번쩍번쩍 빛이 나는 신발’을 신고, 그 신발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려다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자책하고 난 안된다고 좌절하고 있고 것은 아닐까? 지금 내 발에 맞는 꼭 맞는 신발이 나를 가장 잘 달릴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다가오는 새 봄. 내 발의 모양을 잘 살펴보고, 가볍고 편한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고 달리며, ‘이만하면 충분한 나’를 맞이해 보았으면 좋겠다.   정여주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자격검정위원장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학과 상담심리전공 교수

  상담자를 위한 다문화교육의 필요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다문화교육이 상담효과에 도움을 주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그만큼 다문화 교육이 단기간의 교육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영역인 까닭인 지도 모르겠다. 다문화교육은 타 문화에 대한 이해등 지식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 만으로 효과를 볼 수 없는 영역이며, 상담자 자신의 변화를 전제한다. 나는 석사과정 학생으로 다문화 교육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미국 유학은 나에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신분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언어와 문화의 다름, 재정적 어려움은 미국사회에서 내가 심히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날마다 인식하며 살게 해 준 경험이었다. 그 가운데서 나를 지탱케 해 주었던 힘은 그 생활이 임시적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몇 년 후면 한국의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희망이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다문화 교육 수업을 듣는 것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처럼 나에게는 큰 위로 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의 고통을 알아 주고 나같은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상담학계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만난 것 같이 기뻤다. 나의 소수민족으로서의 경험이 다문화교육의 필요성에 쉽게, 그리고 절대적인 공감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다문화교육은 체험적 교육방법에 의해 가장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교육학자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하게 되었다. 체험적 교육방법을 시행하는 것은 교육자의 입장에서나 학생의 입장에서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외에 소수민족이 겪는 아픔에 동참할 때 느끼는 감정적 고통의 대가도 치루어야 한다. 때로는 이 교육을 위해 재정적 투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경우, 이러한 체험적 교육방법은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생각에서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미국과 한국대학 상담학생들의 교류 프로그램 이었다. 한국 K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5월 말에 K 대학에서 한국의 학생들과 공동 수업을 하며, 함께 상담에 관련된 주요 이슈들을 논의 했다. 이슈가 두 나라간 어떻게 다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지리적, 상황적 차이가 인간의 삶과 의사결정, 행동등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 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수업 외 시간을 통해 수업시간에 논의되었던 이슈들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검증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비록 한나라를 방문 하지만, 이를 통해 타민족을 이해하는 그들의 시각이 바뀌고, 더 배우고자 하는 관심이 늘기를 기대했던게 잠재적 교육목표 중의 하나였다. 이와 같은 국제 다문화교육 체험 프로그램은 사실 많은 상담교육자들에 의해 널리 그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츨판된 논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제시되고 있다. 첫째, 학생들의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타민족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아집과 편견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 태도, 생활방식, 특권의식 등이 자신이 자란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배워진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재발견은 자신의 뿌리가 되는 가정배경과 문화를 더욱 알고 싶어하는 동기를 부여해, 지속적인 자아발견과 노력의 계기를 제공한다. 둘째, 타민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접촉하게 된 민족의 생활방식, 전통, 가치관, 가족관계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과 지속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타민족과 자신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 세계를 보는 안목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한다. 직접경험에 의한 지식습득의 경험은 또 다른 유사경험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세계여행, 외국어 습득, 평생교육과 같은 그동안 무관심했던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 주기도 한다. 셋째, 이렇듯 증가된 자기발견과 타민족에 대한 이해는 타문화에서 오는 피상담자와의 효과적인 상담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문화적, 사회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상담의 기본요소인 듣기, 공감하기, 무조건적인 수용이 갖는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이를 상담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긍정적인 상담관계 형성을 도와 준다. 언어가 다른 피상담자를 상담하는 경우, 비언어적 표현, 즉 얼굴표정, 몸짓등이 갖고 있는 의미의 중요성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상담접근법에 변화가 오게 된다. 또한 언어를 적게 사용하는 놀이치료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되어, 상담활동의 댜양화를 시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수민족을 상담하는 경우 상담실에 국한 된 상담을 넘어, 실제적으로 피상담자 집단의 권익 옹호를 위한 사회정의 실현 운동에 동참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이에 따라 의식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시하는 등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 활동에 참여한다. 즉, 체험을 통한 다문화교육을 실시할 때,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생명있는 산교육의 효과가 있으며, 이에따라 상담인이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학생들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 (life-changing experience), 또는 "눈을 뜨는 경험" (eye-opening experience) 이라고 표현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문화교육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잘 알게 해 상담인을 겸허하게 만들며, 자신과 다른 배경에서 오는 피상담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 해, 마틴 부버가 예기하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가능케한다고 보겠다. 상담에서 상담지식이나 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지만, 변화와 성장을 일으키는 진정한 원인은 두 사람의 진솔한 만남이라고 볼 때, 상담자의 삶에 대한 태도와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다문화교육의 중요성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다. 이에 다문화 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직접경험에 의한 교육방법은 여러가지 형태로 개발되어 다문화교육에 사용되어 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집단적, 체계적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직접경험을 통해 자신을 개발하고자하는 개인적인 노력도 권장해 보고 싶다.   서수현 교수 AUBURN UNIVERSITY 교수 (사)한국상담학회 국제지역상담학회 회장